KBS1 인간극장
엄마의 102번째 봄
방영일 : 2024년 3월 4일~ 2024년 3월 8일
5793회, 5794회, 5795회, 5796회, 5797회
제주도의 보목마을은 섶섬이 보이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치매에 걸린 김성춘(102세)씨와 딸 허정옥(64세)씨의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전에 없던 혼잣말을 늘어 놓던 어머니 김성춘씨는 6년전 치매 4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서 119에 신고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해가 지날 수록 상태가 심각해지는 어머니를 위해 마침 은퇴를 앞두고 있던 허정옥씨는 어머니의 전담보호사를 자처했습니다. 어머니의 룸메이트로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머니 김성춘씨는 어느덧 102번째 봄을 맞이했습니다. 딸 허정옥씨는 올해도 어머니의 찬란한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친 바다를 닮은 강인한 제주 할망이었던 어머니 김성춘씨는 물질을 하면서 2남 7녀를 키워냈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뭍에 나가서 공부할 수 있었던 정옥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 다니면서 미국 유학에 박사까지 하며 학업을 병행했습니다. 서귀포에 새로 개교한 대학에 교수로 임용된 정옥 씨는 그 뒤로도 여러 직위를 겸하고 있습니다.
허정옥씨는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심해졌을 때 주간 보호에 보냈던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은퇴를 앞두고 있던 덕에 '요양원에 보내지 말아 달라'는 어머니 김성춘씨의 소원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20년 전에 서귀포 시내에 살다가 섶섬이 보이는 집에 이사온 것도 다 어머니를 위해서였습니다. 해녀였던 어머니가 바다가 추억을 선물해주고 살아갈 기운을 불어 넣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볕이 좋은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 성춘씨는 섶섬지기가 되어서 대문 앞자리를 지키고 앉아있기 바쁩니다. 102세 어머니와 함께 지나며 이 시간이 다시 올지, 마지막은 아닐까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정옥씨는 하루에 한번 어머니의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어머니 김성춘씨와 지내면서 노인복지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허정옥씨는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고 사회복지사까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연구원을 설립해서 노인복지증진에 힘쓰는 것도, 독거노인을 방문해서 말벗이 되어드리는 것도 어머니를 모시지 않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머니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아들을 위해 이민을 갔습니다. 17년간 어린 손주들을 돌보며 미국 생활을 이어갔던 어머니입니다. 허정옥 씨는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남편 김수운(72세)씨를 만나서 결혼하고 서로 닮은 아들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남은 공부가 있던 남편 수운씨는 미국으로 가고 서귀포에 대학이 생기며 평생교육원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하게 된 허정옥씨였습니다. 그러다 미국에 계시던 아버지의 부고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다섯째 딸인 허정심(66세)씨의 진두지휘 아래에 집 앞 작은 텃밭에 배추를 심었습니다. 밭일에 익숙한 어머니에게 심심풀이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허정옥씨는 노인의 편에서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초고령사회에서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60대 딸의 이야기를 통해서 돌봄의 의미를 생각해보았습니다.
허정옥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장
제주장수복지연구원장
탐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역임
제주 보목마을
위치 주소 : 제주 서귀포시 보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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